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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0 14:05

책-고래

고래(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상세보기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펴냄


"그 옛날 앞을 볼 수 없었던 文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자유롭게 과거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이미 그녀의 주변에서 사라진 것들을 다시 만났다. 금복과 文, 쌍둥이 자매와 생선장수... 그리고 멀리 어둠속에서 코끼리 점보가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점보는 이전보다 훨씬 더 덩치가 커져 산처럼 거대했으며 신비로운 광채로 휩싸여 있었다. 춘희는 점보로부터 쏟아져나오는 빛에 눈이 부셔 손으로 눈을 가렸다.

넌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춘희는 점보에게 물었다.
난 어디에도 없어. 이미 난 오래전에 사라졌으니까.
점보는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지금 내 앞에 보이는 건 뭐지?
후후. 꼬마아가씨. 그건 바로 너의 기억속에 있는 거야.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넌 이미 사라졌는데...
그러니까 기억이란 신비로운 것이지.
그런데 왜 난 사라지지 않지?
당연하지. 넌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나도 빨리 사라지고 싶어. 여긴 너무 힘들거든. 그리고 너무 외롭고...
꼬마 아가씨. 너무 엄살부리지 말라고. 그래도 살아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야.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죽음보다 못한 삶은 없어.

춘희와 점보의 문답은 끝이 없었다. 그리고 광막한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냈다. 그녀는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남으로써 끔찍한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칠흑같이 어둡고 좁은 징벌방안에서 마침내 자유를 찾아냈던 것이다."


소설을 읽어 본 지가 언제이던가.
까마득한데...
오랜만에 집어든 소설 한 권이 바로 이 책 '고래'.

학생 하나가 책 소개를 해 달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지난 5년 동안 책 읽으라고 무진장 이야기를 해도 귓등으로도 안듣더니만
왠일인지 올 여름에는 책을 읽어야겠다면서 말이다.
남편에게 물어봤다.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뭐가 있을까?
단번에 '고래'라고 말한다.
'야하고 독특하고 무엇보다 재밌다'라고 했다.
고녀석을 홀리기에 적합한 평이라 '신화의 힘'하고 '고래'를 추천하는 문자를 보냈다.
'고래' 앞에는 '야하고 재밌는 책'이라는 수식어도 함께.
그랬더니 고녀석 "'고래'부터 읽어야겠네요. ㅋㅋ".
그럴 줄 알았다.

추천하고서 내가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점점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반 강제적으로 집어든 책이다.
그런데...
재밌다.
이야기에 힘이 있다.
허...참...
책 날개에 다양한 평이 있는데 제일 공감이 가는 평은
'당황스럼다. 그러나 자꾸 빨려들어간다.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
타고난 이야기꾼임에 틀림없다.
점잖은 척하는 문체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거침없이 과감하게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쭉쭉 끌고간다.
게다가 이렇게나 다양한 인물군도 처음 본다.
온갖 신화를 섞어놔도 이런 인물군은 나오기 힘들 것 같다.
설화보다 재밌고 SF보다 조금은 현실감(이 소설에 현실감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러니까는 SF보다는..SF보다는..현실감) 있는...
허...참...
새롭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다가 '그것은 ~ 법칙이었다.' 라는 작가의 한 마디면 그 뿐.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소설이다.
이야기에 내재된 폭발적인 힘.
작가의 능력이다.
한여름 휴가철에 읽기에 적합한 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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